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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bby

아스날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투어 - 27 MAY 2023

by Anger Kim 2026. 5. 26.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나에게 처음이자 처음이 아닌 공간이다.

 

시간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페인으로 향하던 길,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개트윅 공항으로 환승하기 위해 16시간 동안 런던에서 레이오버를 하게 되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런던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빅벤, 타워브리지, 런던아이 등 랜드마크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 마음속 런던은 오직 하나, 내가 응원하는 축구팀 아스날의 홈구장이 있는 곳이었다.

 

비행기가 4시간이나 연착되는 바람에 늦은 밤이 되어서야 런던에 도착했다. 아침형 인간이 아님에도 다음 날 새벽 6시에 눈이 떠졌다. 튜브(지하철)를 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드라이튼 파크(Drayton Park)역에 내려 경기장으로 향했다. '아머리(The Armoury)'에서 기념품을 사고 나오는데, 직원이 스타디움 투어를 권했다. 하지만 오후 2시 비행기로 스페인에 가야 했던 터라 호텔로 돌아가 짐을 챙겨야 하는 나에겐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다음에 꼭 다시 오겠다"는 아쉬운 다짐을 남긴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그땐 전 세계를 덮친 팬데믹으로 다시 오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2023년 봄, 아스날이 20년 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다시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록 비행기가 떴을 땐 이미 순위가 정리되어 2위로 마무리가 굳어진 뒤였지만, 늘 조롱받던 '4스날'이 '2스날'이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앞으로 더 나아갈 가능성을 보았으니까. (물론 그 희망이 나를 또 다른 절망으로 데려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그렇게 7년 만에 다시 찾은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은 변한 듯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노스런던을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경기장 외부에 걸린 각국 서포터즈의 배너 중, 아스날코리아의 "우리는 잠들지 않습니다" 한글 배너가 유독 아름답게 빛났다. K-구너라서 그런지 유난히 더 커 보이는 착시효과마저 느껴졌다.

 

스타디움 투어 입장권 구입 및 팁

스타디움 투어 티켓은 경기장 기념품 숍인 아머리나 아스날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내가 방문한 날은 2022/23 시즌 38라운드 최종전 바로 전날이었는데,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웨이팅 없이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아머리에서 예약 QR코드를 보여주면 입장과 함께 오디오 가이드를 나눠준다. 아쉽게도 일본어는 지원하면서 한국어 서비스는 없었다. 하지만 경기장 내부에 투어 동선 동선마다 방향 안내 표지판과 번호판이 친절하게 잘 마련되어 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디렉터스 박스

 

다이아몬드 클럽 & 디렉터스 박스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장 먼저 올라간 곳은 최고급 관람석이 있는 '다이아몬드 클럽'이었다. 리셉션 데스크에는 하이버리 스타디움의 상징이었던 '더 클락 엔드(The Clock End)'를 본떠 만든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어 상징적인 의미를 더했다. 내부에는 미슐랭 2스타급의 고급 식당과 바가 있어 경기 전후로 VIP들이 매치를 즐기는 공간이라고 한다. 일반 팬들이 경기를 보러 이곳에 오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결혼식 같은 행사로 대관도 가능하다고 하니 차라리 인생의 큰 이벤트를 만들어 보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

 

클럽 내부에 전시된 여러 흉상 중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단연 아르센 벵거 감독의 흉상이었다. 벵거의 인빈시블(무패 우승) 시즌 덕분에 아스날에 입덕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이후로 숱한 고통의 나날을 선물하긴 했지만, 22년간 아스날을 지휘해 온 그의 위엄은 여전했다.

 

외부의 '디렉터스 박스(Directors Box)'로 나가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의 탁 트인 피치가 한눈에 담긴다. 경기장의 중간층이라 피치와 거리감이 딱 좋아 경기 흐름을 읽기에 최고의 명당임이 틀림없었다. 중계 화면에서 아스날 보드진이나 귀빈들이 비칠 때 앉아있던 바로 그 자리다. 위쪽 스탠드가 지붕 역할을 해줘서 비가 와도 젖지 않고, 의자도 플라스틱이 아닌 폭신한 쿠션 시트로 되어 있었다.


 

하이버리의 정수가 담긴 타임캡슐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한구석에는 과거 하이버리의 영광을 담은 타임캡슐이 묻혀 있다. 총 39개의 아이템이 들어있는데, 주변에 적힌 아이템 리스트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다 보니 (비록 20년 동안 리그 우승은 못 했을지언정) 역사가 깊은 명문 팀의 팬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리스트 26번에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이자 골수 구너인 닉 혼비의 소설 『피버 피치(Fever Pitch)』가 함께 묻혀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땐 반가움에 눈길이 멈추기도 했다.

프리매치 터널

선수들이 드레싱룸으로 향하는 '프리매치 터널'에 들어서자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북런던의 강렬한 레드 컬러 배경 위로 선수들의 투지를 깨우는 강렬한 동기부여 문구들이 적혀 있었다. 이 터널을 지나 드레싱룸으로 가는 길 양옆으로는 트레이닝룸, 피지컬 테라피룸, 컨디셔닝룸, 그리고 샤워실이 배치되어 있어 마치 아스날이라는 거대한 극장의 백스테이지를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드레싱룸

프리매치 터널을 지나면 양끝으로 홈팀과 어웨이팀의 드레싱룸이 위치한다. 드레싱룸에는 각 선수의 유니폼이 걸려있다. 좋아하는 선수 자리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날은 마지막 경기 전날인 만큼 앉아 볼 순 없었다. 앉을 수 없다면 누워 볼 수 있겠지.
어웨이 드레싱룸은 홈팀 공간과 달리 정말 단조롭고 기능에만 충실했다. 원정 팀 선수들에게 그 어떤 동기부여도, 편안함도 주지 않겠다는 아스날의 치밀한 전략(?)이 느껴지는 서늘한 공간이었다.

어웨이 드레싱룸

감독실  (미켈 아르테타 오피스)

선수 시절부터 참 좋아했던, 이제는 당당히 아스날의 수장이 된 미켈 아르테타의 감독실로 발길을 옮겼다. 방 안에 걸린 아르테타의 선수 시절 FA컵 우승 사진을 보는데 왠지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핑 돌았다.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캡틴이 감독으로 돌아와 팀을 다시 우승 경쟁 그룹으로 올려놓다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매 경기 당장이라도 피치로 뛰어들 것처럼 터치라인에 바짝 붙어 서서, 선수가 골을 넣으면 본인이 더 기뻐하고, 눈에서 광기를 뿜어내며 전술을 지시하는 감독. 비록 이번 시즌 우승은 놓쳤을지언정 그의 '테타볼'이 언젠가 결실을 보리라는 믿음은 확고해졌다. 아르테타, 바로 이 사람이 나를 비행기로 14시간이나 떨어진 런던까지 불러들인 장본인이다.

 

플레이어스 터널

타프를 씌운 접이식 플레이어스 터널이 설치되어 있었다. 통로 끝에서 피치가 보이는데  소름이 돋았다. 선수들이 경기 시작 전 이곳에 열을 맞춰 서있는 걸 방송에서 많이 봐서일까? 터널을 빠져나오자 드넓은 피치와 거대한 관중석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중계 화면으로만 보던 뷰가 눈앞에 펼쳐졌다. 오직 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시선을 그대로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경기 전날이라 감독·선수 벤치 구역은 접근이 제한되어 조금 아쉬웠다.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피치


미디어 룸

경기 후 감독과 선수들이 간단히 인터뷰하는 인터뷰룸과 경기와 시즌을 어떻게 이끌지 질의응답을 하는 프레스 콘퍼런스 룸이 있다. 인터뷰룸에서 사진을 찍어봤더니 간신히 배경에 머리가 담긴다. 선수들이 실제로 얼마나 큰지 실감이 났다. 프레스룸에서는 의자에 앉아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해 볼 수 있다. 

스타디움 투어 기념품

투어가 끝나면 무료로 이름을 인쇄한 '투어 인증서'를 받을 수 있다. 선택사항으로 유료 크로마키 기념사진 촬영도 해주는데, 합성 결과물이 조금 참담하긴(?) 하지만 지갑 사정이 허락한다면 추억 삼아 한 장 남겨볼 만하다.

투어를 즐기는 팁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투어를 하는 동안 경기장 곳곳에 숨겨진 아스날 엠블럼(대포 마크)의 사진을 수집해 보자. 조금씩 다른 스타일의 대포 로고들을 찾아내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