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26 시즌 아스날 우승 확정을 기뻐하며 오랫동안 미뤄온, 아스날이 우승하지 못해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런던 축구 여행기를 써보자고 한다.
2023년 3월 K구너는 아스날이 프리미어 리그 선두 자리에 있고 20년 만에 우승하리란 정신착란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 시즌 복싱데이 전까지만 잘하던 아스날이 봄까지 잘하는 건 드물었기 때문이다. 한동안 여행제한으로 국내외 여행을 못한 지 3년 동안 코로나 블루는 내 정신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도 있고, 봄바람에 조증이 온 것도 런던행을 결심한 이유라면 이유고 변명이라면 변명이다. 런던행 항공권과 22/23 시즌 마지막 라운드 홈경기 티켓을 월급보다 더 많은 리셀가를 주고 구매했다. 아스날은 20년 만에 우승할 거니까. 새 회사에 입사 후 휴가 다운 휴가도 못 간 것에 대한 보상이었달까? 이렇게 저렇게 이유를 대보려 하지만 제정신이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그 후 아스날은 지옥 같은 4월을 보냈고,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을 때 이미 아스날은 22/23 시즌 우승에서 멀어진 2위에 자리 잡았지만, 무르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쓰라린 속을 잡고 런던행 비행기에 올랐다.

숙소는 하이버리 이즐링턴 역 근처 에어비앤비로 방하나를 빌렸다. 히스로공항에서 영국의 1호선이라 불리는 피카딜리 라인을 타고 한 시간 반 거리였지만 여행짐을 들고 환승하지 않아도 돼서 마음이 편했다. 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르는데 갑자기 계단 구간이 나타났다. 한국이면 걱정 없이 두 번 왕복하면 될 것을 해외여행이라고 가방을 훔쳐갈까 봐 겁부터 나더라. 내 허망한 표정을 읽었는지 런던 인들이 도아줘서 쉽게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다. 도아주는 와중에도 긴장을 놓지 않았으나 이 무거운 짐을 들고 도망가봤자 얼마나 가겠나 싶더라고. 친절했던 런던 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숙소는 방 두 개짜리 복층형 복합주택이었는데 뒤뜰이 있어 침대에 누우면 창문 밖으로 푸른 나뭇잎과 이상하게도 좋았던 런던 날씨 때문에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아주 조용하고 깔끔한 호스트를 만나서 불편함 없이 지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시차 때문에 나는 호스트가 출근 후 한참 후에야 일어났고 호스트가 잠자리에 들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는 살금살금 들어왔으니까.

경기 당일, 2023년 5월 29일, 정성스럽게 내가 입덕하면서 받은 아스날 04/05 O2 저지를 입었다. 일찌감치 나와 경기장 가는 길에 있는 식당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를 주문했다. 이게 뭐라고 가끔 생각나서 집에서 해 먹는 메뉴가 되었다.

숙소에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까지 도보로 15분쯤 걸린다. 경기장으로 향하는 구너무리에 섞여 같이 걸어간다.
경기장에 들어갈 땐 간단히 가방 검사 후, 티켓 큐알코드로 입장이 가능하다. 콘서트도 그렇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물병은 반입이 안된다. 입장 큐알코드는 한번 스캔하면 끝이다. 경기장을 한번 들어가면 나왔다가 재입장이 불가능하다. 중복입장 방지를 위한 것 같다.
경기장 바깥공간에 매점이 있어 일단 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는데 경기장 안에는 맥주 반입이 불가했다. 혼자 축구 보며 맥주 마시는 버릇이 있어서 시원하게 파인트 한잔을 들이켠다. 여기저기서 아스날 챈트가 들려온다. 8800킬로미터 떨어진 동양에서 온 나는 극외향인임에도 그들 중 하나가 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다.





경기장에 들어서니 화창한 날씨에 양 팀 선수들이 몸을 푸는 걸 볼 수 있다. 아스날 레전드 솔 캠벨 씨가 피치로 나와 팬들과 인사를 했다. 실제로 보니 더 크다. 멀리 있는데 바로 앞에 있는 것만 같다.

아스날코리아의 “우리는 잠들지 않습니다” 배너는 경기장 동쪽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내 좌석은 벤치 뒤. 월급만큼의 티켓값이 설명이 된다.
눈치챘을지 모르겠지만 선수시절부터 현재 감독까지 아르테타의 팬으로서 그를 가까이 보고 싶었다. 2011년 ‘아르테타 라르테타 가르테타 바르테타 주르테타 페르테타 키르테타 메르테타’라고 글을 쓸 만큼 그의 플레이를 좋아했다. 현재도 경기메이커 미드필더를 가장 좋아하는 편이다.




하프라인 근처 피치에서 가까운 아래층은 경기 흐름을 즐기기엔 좋은 자리는 아니다. 양쪽 골대 가운데 있다 보니 선수들 골 넣는 거 하나도 안 보인다. 아래층과 위층 사이 다이아몬드 클럽이 위치한 중간층이 경기를 보기에 가장 좋은 자리임이 틀림없다. 벤치 뒤 자리의 장점은 아르테타가 바로 앞에 왔다 갔다 해서 많이 볼 수 있다는 것.



매일 티브이로만 보던 축구를 경기장에 와서 보니, 누가 어떻게 골을 넣는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골망이 흔들리면 생각할새 없이 일어나서 함성을 지르는 것. 선수들을 위해 챈트를 부르는 것. 경기 결과가 어떻든 그곳에 아스날을 위해 있는 것. 양 팀 선수들 움직임에 응원과 야유. 경기장과 선수와 응원팬들이 하나 되는 90분을 즐기는 것.

경기는 헤수수의 어시스트로 그라닛 자카의 헤더로 울버햄튼의 골망을 흔들며 아스날 주도로 시작했다. 사카의 돌파와 외데고르의 뒤꿈치 패스가 자카의 발에 걸려 두 번째 골을 넣었다. 그라닛 자카가 아스날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는데 전반에 두 골이나 넣었다. 후반 교체 될 땐 We’ve got Granit Xhaka 챈트가 경기장을 가득 채웠다. 세 번째 골은 토르사르가 슬쩍 찔러준 공이 사카의 왼발에 제대로 걸렸다.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골포스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전반 종료 점수는 3-0으로 아스날이 앞서나간다. 울브스가 한참 지고 있음에도 어웨이 관중석은 시무룩하지 않다. 열렬히 피치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을 응원한다. 후반엔 토르사르가 올린 크로스를 헤수스가 헤더로 처리했다. 마지막 골은 코너에서 올린 크로스를 울브스 수비가 잘 처리하지 못하고 키비오 발에 걸려 들어갔다.
후반 추가시간에 후벵 네베스 선수가 프리킥을 처리하는 도중 조르지뉴 선수 머리에 맞는 사건이 있었다. 실제로 보니 의도성이 없어 보이긴 한다. 바로 가서 사과하고 괜찮은지 확인하는 모습도 그렇고.

결과는 5-0. 경기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는 앞의 언급을 무르겠다. 골 많이 터지는 경기가 재미있긴 하다. 클린시트로 이긴 경기라 더 신이 난다.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에 남아 있으면 프레스 인터뷰를 마치고 감독과 선수들이 피치로 돌아온다. 중계되지 않고 아스날TV로 단독으로 볼 수 있는 것 같다. 주장 외데고르와 감독 아르테타의 인터뷰를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다. 아스날이 2위로 시즌을 마감했음에도 테타볼을 믿는 많은 팬들이 아르테타 챈트로 고마움을 전한다.
이후 선수들과 가족 관계자들이 피치에서 어느 정도 시간을 보내는데 구경만 해도 좋다. 티셔츠에 사인이라도 받으려면 이때 눈에 띄면 성공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K구너는 그냥 바라만 보았다.



숙소로 돌아와 발코니에서 맥주를 한잔 하며 쉬는데 어디선가 아스날 챈트가 들린다.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향한다. 밤이 늦었는데도 남아있는 구너들과 맥주를 한잔 하며 담소를 나눴다. 아스날이 우승할 줄 알고 14시간 날아온 이야기, 손흥민 얘기는 꺼내지 말라, 다음 시즌 아스날이 우승하지 않을까?
우승하면 꼭 다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 오리라 마음먹고 남은 일정 축구 없는 런던을 즐기기 위해 잠자리에 든다.
이어서… 3월에 잘 나가는 아스날에 속아 또! 23/24 시즌 런던에 다시 가게된 후기도 기대해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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